커피 때문에 생긴 일 · 02 · 이야기와 만화
원두는 내가 주문했는데, 취향은 부장님이 정한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취향을 통과해야 할 줄 몰랐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평범한 주문이었다. 펭귄은 늘 마시던 원두를 장바구니에 넣고, 단체방에 이번에도 같은 것으로 사겠다고 알렸다. 답장은 삼 분 만에 왔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커피로 해보자는 부장님의 제안이었다.
그 뒤로 진한 커피가 좋다는 사람과 덜 쓴 것이 좋다는 사람이 차례로 나타났다. 향이 좋으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 그럴듯했고, 어느 의견도 장바구니의 결제를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원두 주문 담당, 펭귄
펭귄이번에도 같은 원두로 주문할게요.
부장님 메시지이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걸로 해보면 어때요?

하양이부드러운 게 덜 쓴 거야, 연한 거야?
선배그러게. 같은 말을 하는데 같은 맛을 생각할까?
점심 뒤, 세 사람은 회의실에 커피 두 잔을 놓았다. 펭귄은 더 좋은 쪽을 골라달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좋은 커피라는 말이 나오면, 원래 좋아하던 것을 고르는 일마저 시험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대신 내일도 마시고 싶은 쪽을 골라보자고 했다. 하양이는 향이 오래 남는 잔을, 선배는 쓴 여운이 짧게 느껴지는 잔을 집었다. 조금 전까지 둘 다 부드러운 것을 원한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취향을 말하는 단어는 같아도 고르는 잔은 달랐다. 누군가의 표현을 틀렸다고 고치는 것보다, 같은 커피를 앞에 두고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듣는 편이 대화를 빨리 움직이게 했다.
그런데 정작 의견을 처음 낸 부장님은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부장님이 생각한 것은 오후마다 탕비실로 가는 직원이 아니라, 회사에 처음 방문하는 손님이었다.

펭귄그냥 내일 또 마시고 싶은 쪽을 골라봐.
하양이난 이쪽. 향이 남는 게 좋아.
선배나는 저쪽. 쓴 여운이 짧아서.

펭귄부장님은 어느 쪽이세요?
부장님 메시지나는 커피 잘 안 마셔요. 손님 드릴 때가 걱정돼서.
완전히 엉뚱한 걱정은 아니었다. 직원들이 마시는 컵과 손님에게 내는 컵도 달랐다. 누군가는 우유를 더하고, 누군가는 그대로 마셨다. 하나의 원두를 고르는 대화에 여러 상황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었다.
펭귄은 주문 메모를 둘로 나눴다. 매일 마시는 사람들의 선택을 먼저 적고, 손님에게는 어떤 잔으로 어떻게 낼지 따로 적었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한 봉지로 해결하려고 하니 주문이 자꾸 회의로 바뀌고 있었다.
원두 주문 담당자가 취향 심사위원까지 맡을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마실 커피를 말할 사람에게는 직접 골라볼 기회를 주고, 다른 목적으로 의견을 낸 사람에게는 무엇이 걱정되는지 물으면 됐다.

하양이아, 우리는 매일 마실 커피를 고르고 있었는데.
선배직원들 취향과 손님께 내는 방법을 나눠서 생각하자.

펭귄그럼 원두는 마시는 사람들이 고른 쪽으로!
부장님 메시지좋아요. 그런데 차도 좀 바꿔볼까요?
주문은 그날 오후에야 끝났다. 누구의 취향이 이겼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직접 마셔보고 고른 쪽으로 주문하겠다는 짧은 문장만 단체방에 남겼다.
곧바로 차도 바꿔보자는 답장이 왔다. 펭귄은 회의실에 남아 있던 찻잔을 바라봤다. 커피 취향 회의가 끝난 줄 알았는데, 회사의 음료 담당자가 된 것 같았다.
하양이가 물었다. 다음에는 차도 두 가지 놓고 마셔볼 거냐고. 펭귄은 잠깐 생각하다가, 우선 누가 마시는지부터 알아보겠다고 했다.
커피를 사고 마시고 나누는 일상에서 출발한 창작 만화입니다. 실제 회사·직원·고객의 사례나 발언을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승인된 펭귄·하양이·선배 캐릭터를 바탕으로 AI로 제작했습니다.
퍼스트펭귄커피컴퍼니 · 당신의 커피를 로스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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